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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 | 194 | 또한 직접적인 노던 소사이어티 출신은 아니었지만 반란을 적극적으로 지원한 장성들—예컨대 제1군단장과 수도군단장을 맡아 각각 벨포르 북서부와 남서부 방위를 책임지고 있던 앙리 우스망과 샤를 기옹—역시 반란군 측에 가담하며 반란 성공을 뒷받침했다. 헌병 또한 일부 인사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노던 소사이어티 인물로 채워져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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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 | 195 | === 반란 당시 환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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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 | 당시 비달 파브르가 사령관으로 있던 루이나 보안사령부는 이미 모든 군 통신망을 장악하고 있었고, 그 정보는 각 부대 소속 보안부대 네트워크를 통해 속속 전달되었다. 이로 인해 파브르 측은 진압군의 움직임을 거의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었으며, 반대로 진압군은 반란군의 실제 상황은커녕 누가 노던 소사이어티 소속인지조차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작전을 전개해야 했다. 심지어 반란군은 진압군의 작전 교신까지 도청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의 기밀이 사실상 고스란히 파브르 측의 손에 들어갔다. 대표적인 사례로, 제9공수여단이 벨포르로 진입한다는 극비 정보마저 사전에 확보하여, 이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기까지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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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 | 또한 특수전사령부, 수도경비사령부, 대통령 근위사령부 등 벨포르 및 수도권 주요 부대 상당수가 이미 파브르의 심복들에게 장악되어 있었다는 점도 결정적이었다. 그 결과 진압군이 동원할 수 있었던 전력은 편제상으로는 존재했으나 실제로는 이미 반란군 손에 넘어간 병력이 많았고, 따라서 실질적으로는 극히 불리한 조건 속에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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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 | 더욱 치명적이었던 요인은 반란군이 리처드 에반스 대통령과 루이나 국방장관의 신병을 확보했다는 사실이다. 12·13 군사반란은 그 어떤 반란보다도 시간 싸움이 중요한 사건이었는데, 특히 루미연합사 작전통제권 하에 있던 제9보병사단까지 독단적으로 이동시킨 사실은 반란군의 무모한 월권 행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였다. 실제로 루미연합사령관이었던 존 위컴은 이 사실을 반란이 끝난 이후에야 알게 되었고 크게 격노했다. 만약 반란군이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신병을 확보하지 못한 채 시간이 지리멸렬하게 끌렸다면, 결국 자멸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미국의 최우선 과제는 루이나 정국의 안정화였을 것이고, 명분 또한 진압군, 나아가 합법 정부에 있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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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 | 노던 소사이어티는 심지어 대통령 근위사령부 내부에도 암약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통령은 육본 진압군과 합류하지 못하고 따로 총리 관저에 사실상 연금될 수밖에 없었다. 국방장관은 반란 초반에 일시적으로 소사이어티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는데, 에반스 대통령이 요구한 ‘군 최고사령관 체포 동의서’의 결재 요건이 국방장관의 재가였기 때문에 그의 신병은 반란의 성패에 직결되는 요소였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국방장관이 국방부 청사에서 우왕좌왕하다가 곧바로 반란군에게 생포당하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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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4 | 이로써 반란군은 합법적 명분까지 확보할 수 있었고, 대통령과 국방장관의 결재 서명을 통해 반란은 겉보기에 합법성을 띠게 되었으며, 결국 "성공"에 이르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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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 | 205 | === 진압군의 확전 주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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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 | 207 | == 사후 결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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